갠지스강-딥딴 띄우기. 항하사, 화장터, 일몰감상(순례 11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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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계사 작성일26-02-18 14:13 조회57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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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갠지스강
사르나트(녹야원)에서 회향예불을 마치고 화계사 순례단은 갠지스강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버스가 들어갈 수 없어 인도 교통수단인 릭샤를 타고 30여 분쯤 달려 도착했다. 릭샤는 오토바이에 짐칸을 만들어 사람들이나 짐을 싣고 나른다. 4명씩 한 조가 되어 릭샤를 타고 이동하는 길은 그야말로 혼돈의 세계였다. 흙먼지는 기본이고 빵빵거리는 경적소리와 각종 자동차, 오토바이, 사람과 동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질서와는 거리가 먼 현실을 보면서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우리의 시각에서는 어지럽지만 이 풍경은 그들만의 삶의 법칙일 것이다.
갠지스강에 도착했다.
인도 북부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갠지스는 인도인들에게 평범한 강이 아니다. 갠지스는 성스러운 강이며 신(神)의 강이다. 화계사 순례단은 유람선에 올라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신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눈앞에 펼쳐져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도 대륙의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자 인도 문명의 성지인 ‘갠지스강’을 바라보면 유럽 중세의 시각으로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은 인간 중심이 아닌 신 중심의 세계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힌두인들은 지금도 이 강물을 마시거나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면 나쁜 업까지도 정화된다고 굳게 믿으며 평생에 한 번이라도 갠지스강에서 성스러운 목욕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서로 다른 신을 믿어도 갠지스의 이름 아래 그들은 하나였다. 그래서 힌두인들은 이 강물에 목욕재계하면 병이 낫고 죄를 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유람선을 타고 강을 따라가다 보면 멀리 강가의 모습은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보인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배 위에서 화계사 순례단은 그 풍경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느라 셔터 소리가 요란했다.
강가엔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가트라고 했다. 계단식 시설(집, 목욕탕 등)을 말하는데 이곳엔 80여 개의 가트가 있다고 했다. 가트 위에 있는 집들은 예외 없이 거대하고 화려한 성(城)처럼 보였다. 힌두인들은 갠지스강물에 몸을 씻어 정화(淨化)하는 것을 가장중요한 일과로 생각한다. 또 한 죽으면 24시간내에 화장을 해야 신의 앞에 갈 수 있고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바로 바라나시 갠지스강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가트(Ghat)다. 언덕 위 멋진 집들은 옛 성곽을 보는 듯 웅장해 보였다.
강을 따라가다 보니 강 한쪽에 장작을 쌓아놓고 자욱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화장터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난 바라나시 갠지스강 화장터의 충격적인 풍경은 단순한 장면 그 이상이었다. 죽은 이들의 시신이 짐승처럼 쌓여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그곳에 깃든 종교적 신성함과 삶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우리 문화의 섬세한 장례 예법이 스며들어 복잡한 감정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에 이르면 끝까지 예를 다하는 전통이 깊다. 고인을 모시는 손길 하나하나에 존엄과 사랑, 그리고 그 생명이 남긴 발자취에 대한 무한한 존중이 깃들어 있다. 그 섬세함과 정성은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다시 만남의 씨앗이라는 믿음 위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나시의 화장터 풍경은 또 다른 세계의 무게와 시간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내 안에서 울컥 솟아난 감정은 슬픔과 경외 그리고 혼란이 뒤섞인 복잡한 결의였다. 떨리는 가슴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며 삶의 찰나와 영원의 경계가 얼마나 다르게 펼쳐질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이 미묘한 마음의 파고를 글로 풀어내는 일, 내 안에 애절한 울림을 표현할 길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화염 속에 무참히 쌓인 몸들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신성한 우주 질서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고인을 배웅하는 우리 문화의 굳건한 손길이 그리웠다. 그것은 삶에 대한 애잔한 예의였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다움의 마지막 노랫소리였다. 죽음도, 삶도, 그 모두를 담는 이 두 세계의 만남에서 깊은 울림과 함께 인간 존재의 무게를 다시 한 번 깊이 새겼다. 그것이 그들이 갖는 종교의 힘이었다.
화계사 순례단은 갠지스강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잠시 배를 멈춰 강물에 마리골드 꽃으로 만든 딥딴에 촛불을 켜 강물에 띄우며 자신의 소원을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마다의 소원이 딥딴에 실려 갠지스강에 꽃으로 피어났다. 우리가 염원한 모든 일이 이뤄지게 하소서! 합장한 두 손에 간절함이 배어났다.
릭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무거운 마음이 복잡한 길 위에서 교차하면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했다. 지나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이정표가 안개 속에서 뚜렷해졌으면 좋겠다.
▲ 릭샤를 타고 갠지스강으로 이동하는 모습
▲ 릭샤에서 내려 갠지스강으로...걸어가고 있다.
▲배에 탑승...이제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둘러본다.
▲ 갠지스 강가에서 화장하는 모습...화장터 풍경
▲ 화계사 순례단...그 모습을 휴대폰에 담느라 정신없다.
▲ 갠지스 강가 풍경...이 강은 이곳에 사는 힌두인들의 생명의 원천이다.
▲ 띱단 띄우기...마리골드 꽃으로 엮어 가운데에 촛불을 켜 강으로 띄우는 의식...마음에 간절한 발원 하나 꼭! 이뤄지길...
김지희(정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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